올해 3월, 강남의 한 체형성형 전문 의원에서
지방흡입수술을 받던 박 모씨는 석 달 넘게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무기록에는 박 씨가 잠을 잤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강 모씨가 받아본 수술 당일 CCTV 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담겼습니다.
수술 도중 박 씨는 심폐소생술을 6번이나 받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의료진은 계속 지방흡입 수술을 이어간 겁니다.
CCTV 가 없었다면 가족들은 수술 당시의 상황을 영영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 권대희 씨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6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권 씨는 과다 출혈로 숨졌습니다.
묻힐 수도 있던 사건은 수술실 CCTV 덕에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영상에는 의사가 권 씨의 수술실을 나갔고 간호조무사 혼자 권 씨를 지혈하는 장면이 찍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의료사고에는 수술실 CCTV 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실에 CCTV 가 설치된 병원은 얼마나 될까요.
환자가 그 CCTV 를 볼 수 있을까요.
강남의 성형외과들을 직접 돌아봤습니다.
강남 성형외과 상담 받아보니..."80만 원 내면 찍어주겠다"
성형외과 정보 나누는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CCTV 설치 유무.
강남의 한 성형외과.
성형외과 정보를 나누는 애플리케이션 2곳에 'CCTV' 표시가 있는 곳입니다.
상담을 받으며 수술실 CCTV 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상담하던 실장은 냉랭하게 "보길 원하면 경찰을 대동해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라에서 정한 법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현행법상으로 환자와 의료진이 동의하면 CCTV 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게 법조인들의 판단입니다.
애플리케이션에 CCTV 가 있다고 나와 있는 또 다른 성형외과를 가봤습니다.
상담 부위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수술실 CCTV 이야기를 꺼내자
실장은 흔쾌히 "수술실 안에 CCTV 가 있다"라며
"보호자랑 같이 오면 수술 내내 라이브로 다 보여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올 것 같은데 수술 끝나고 녹화된 것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녹화되는 CCTV 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소장과 보관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굳이 제가 수술 장면을 보려면 병원 직원이 수술실 CCTV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뒤
제게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지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모를 의료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수술 영상이 필요한 건데 사실상 자료가 남지 않는 겁니다.
CCTV 는 없지만 정 불안하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어주겠다는 병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 과정을 찍어주는 건 아닙니다.
수술 인력이 종일 영상만 찍고 있을 순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CCTV 는 보여줄 수 없지만, 영상을 찍어주겠다는 병원은 또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특별한 조건이 붙었습니다.
수술 비용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입니다.
실장은 "돈을 안 받고 하면 사람들이 다 찍어달라고 한다"라며
"80만 원 내면 다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상을) 보고 지우는 거다"라고 강조했습니다.
80만 원이나 냈는데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수술실 CCTV 설치는 의무가 아니다 보니
어느 병원에 CCTV 가 설치됐는지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된 게 없습니다.
의료법에는 CCTV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민법 683조에 따르면 환자와 진료 계약을 맺은 의사는 수술 관련 사항을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만약 수술 시 CCTV 촬영에 동의했다면, 환자는 영상을 열람하고 복사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병원마다 대응이 다르다 보니 환자들은 병원을 결정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대학생 이 모씨는 성형수술을 하려고 병원 7곳을 돌아봤지만, 마음을 접었습니다.
과거 의료사고 경험이 있어 CCTV 가 있는 곳에서 수술을 받고 싶었는데 상담을 받아도 아리송했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홈페이지 들어가 보면 CCTV 가 있다고 돼 있어서 상담을 가 정확하게 물어보면
'홈페이지에 기재된 게 잘못된 거다', '우리는 CCTV 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병원도 있었다"라며
" CCTV 있는데 10분만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 곳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또 "가장 최근에 쟁점이 된 성형 수술 (사고) 같은 경우도 사실 CCTV 가 없었으면
법정에서도 시시비비 다툴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상황이 나한테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료기록 등은 마음만 먹으면 임의로 조작할 수 있는데
영상 같은 경우는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으냐"라며
" CCTV 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위주로 병원을 알아봤는데 환자한테 제공도 안 되고
전체 다 볼 수도 없어 접었다"고 밝혔습니다.
국민 80% CCTV 의무화 원하지만…의료계 "잠재적 범죄자 취급" 반대
수술실에 CCTV 가 설치되고 이를 환자가 볼 수 있길 바라는 건 이 씨뿐만이 아닙니다.
성형수술 후기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CCTV 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게시물이 나옵니다.
CCTV 가 있는 병원 리스트를 추천해달라, CCTV 없는 곳에서도 수술해도 되냐는 등의 질문이 올라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 2018년 보건복지부가 소비자권익포럼에 용역을 맡겨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4.4%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CCTV 설치는 더디기만 합니다.
경기도는 2018년 공공의료원에 수술실 CCTV 를 설치하고 민간병원에도 이를 확대하고자
설치 비용을 보조하는 사업을 벌였지만, 신청자는 단 3곳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의사가 여전히 수술실 CCTV 설치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의료계는 CCTV 설치가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며
수술 집중도도 떨어뜨린다고 반대합니다.
환자와의 신뢰 관계도 약화한다고 항변합니다.
이동욱 경기도 의사회장은 "의사도 사람이잖아요.
근데 자기를 못 믿어서 감시하고 이렇게 하겠다는 자체가 집중도 안 된다"라며
"환자한테 방어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기 마련"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 의료 소송도 많아질 것이라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2018년부터 수술실 CCTV 를 시범운영 중인 경기도 의료원에 따르면
촬영 동의율은 70%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촬영 사본 요구는 1건도 없습니다.
다만 의료계의 우려도 고려해 보완책으로 CCTV 설치를 의무화하되
의료소송이 개시됐을 때만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이 고려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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